컨텐츠상세보기

조선팔도를 울리고 웃긴 경성의 연예담 (커버이미지)
예스24
조선팔도를 울리고 웃긴 경성의 연예담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김은신> 저 
  • 출판사타임비 
  • 출판일2015-08-21 
보유 1,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책소개

이화중선, 임방울, 그러나 박춘재

우리나라 음반사(音盤史)에서 가장 많은 작품수를 취입한 예인은 이화중선이라고 한다. 2백여장이나 된다니 놀라운 일이다. 다음으로 임방울, 그 다음이 박춘재이다. 차이가 나봤자 근소한 차이이다. 물론 이것은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다. 그들의 명성으로 볼 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성질도 아니다. 그 자체로 인기도를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용면으로 들어가서 보면 그들의 명성과 인기라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화중선과 임방울은 판소리 명창으로 일세를 뒤흔들었지만 박춘재는 대중 속에서 좀더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더 대중적이라는 말은 흥행사들이 첫 번째 표적으로 삼은 인물이 바로 박춘재였다는 말로 대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흥행사라니! 연예인이 있기 전에 흥행사들이 있었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일본인, 중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영국, 프랑스인도 있었다. 한국인으로는 박승필이 가장 유명했다. 그들이 목표로 한 것은 어떻게든 최고의 예인을 찾는 것이었다. 그들은 흥행을 위해 극장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짜고, 입장료, 관람시간도 정했다. 이때의 상황은 그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최초의 관람료, 최초의 입장권이 되었다. 시장이나 나루터, 동구밖에서 판을 벌여 놓고 연희를 하던 때에 비하면 분명 사건이었다.
이때 뒷북을 치면서, 아니 닦아놓은 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벌인 사람들이 있었다. 약칭으로 일축(日蓄)이라 부르는 일본 축음기회사가 그곳이었다. 한일병합 직후 재빠르게 상륙해 최고의 예인이 누구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낡은 창고를 개조해 극장으로 만든다거나 담배를 팔기 위해 활동사진을 보여주는 식의 그런 흥행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미국 레코드사와 손을 잡고 우리나라에 음반을 팔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가장 인기있는 소리꾼을 찾아 섭외해야 했다. 그들의 사업 전략은 매우 치밀해서 직접 공연장을 가보고 사람들이 무엇을 재미있어 하고, 왜 재미있어 하고,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지 눈으로 확인해본 다음 드디어 어디를 가든 최고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소리꾼 한 사람을 찾아냈다. 박춘재라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나이는 28세. 헌칠한 키에 흰 얼굴, 두 눈이 유난히 맑은 젊은이였다. 사람들은 말했다. 서울서 태어나 잡가라면 따를 사람이 없고, 재담이 또한 일품이라 했다. 일축은 그를 비롯해서 심정순, 문영수, 김홍도, 문영갑도 같이 섭외해 일본으로 가서 107매나 되는 음반을 취입해 판매했다. 우리나라에 음반시대가 시작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목차

제1화 / 흥행사들의 표적 제1호는 박춘재
제2화 / 서울에서 발생했던 말의 문화, 만담
제3화 / 주연배우보다 더 인기있었던 변사
제4화 / 신곡을 낼 때마다 팔도를 들썩이게 했던 기생가수들
제5화 / 지금도 진행중인 ‘이수일과 심순애’의 연애사건
제6화 / 굿판에서 시작된 팔도의 유행어, ‘왔구나, 왔소이다.’
제7화 / 홍도, 아직도 울고 있다.
제8화 / 연예인을 예술가라 불렀던 오케레코드
제9화 / 소외된 채 유명한 무용가, 배구자
제10화 / 경성시대 이전부터 팔도를 울리고 웃겼던 아리랑

한줄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