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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립순국열사전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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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립순국열사전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박태원 지음 
  • 출판사온이퍼브 
  • 출판일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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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포에게 고하노라>

제4장 본문 중에서



보호조약이 체결된 뒤로 보름이 지난 11월 초 사흗날이다.

궁중으로부터 물러 나온 민 충정공은 자택으로 돌아오자 집안사람을 물리치고 홀로 사랑으로 들어갔다.

단정히 문궤 앞에 앉은 공은 이윽고 붓을 들어 두 통의 유서를 초(抄)하였다. 한번 죽어, 위로 황은(皇恩)(황제의 은혜)에 보답하고, 아래로 이천만 동포에게 죄를 사례하려는 것이다.

쓰기를 마치자, 공은 문고리를 안으로 걸어 닫은 다음 단도를 들어 할복하였다.

이것이 나라를 근심하는 지극한 정의 표현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와 함께 침략자 일본에 대한 유일한 반항의 수단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유서의 한 통은 바로 이천만 동포에게 뒷일을 부탁한 것이었다.

동포에게 남긴 유서의 전문은 ~

저자소개

호는 구보丘甫, 1909년 서울 출생. 약국을 경영하는 아버지 박용환과 어머니 남양 홍씨 사이에서 4남 2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8년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에 들어가 4학년을 마치고 1922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9년 일본 호세이 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중퇴하였다. 춘원 이광수에게 사사 받았으며, 1926년 <조선문단>에 시 <누님>으로 데뷔, 1930년 <신생>d[ 단편소설 <수염>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이태준 · 정지용 · 김기림 등으로 구성된 구인회에 이상과 함께 가담해 활동했다. 중국 소설을 번역하면서 한때 작품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하다가 해방을 맞았고, 해방 직후 이태준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참여해 소설부 위원을 지냈다.
6·25 전쟁 중 월북해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55년 시조 시인 조운과 함께 《조선창극집》을 펴내기도 하였다.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작품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60년 작가로 복위되었다. 이후 창작에 매진하여 1965년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등 역사소설을 발표했다. 실명한데다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되어서도 아내 권영희의 도움으로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완성하고 1986년 고혈압으로 죽었다.
작품으로 단편소설 <딱한 사람들> <전말> <비량> <진통> <성탄제>와,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장편소설 《천변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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